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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조원규의 농구 in] 코트의 신사 김진, 농구는 제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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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6-09 11:25 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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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조원규 칼럼니스트] “연예인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재능기부에요.” 과거 한 연예인으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이해가 됩니다. 공익적인 행사나 영상 촬영 섭외가 많습니다. 그리고 ‘공익적’이라는 이유로 재능기부를 요청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한두 건이라면 모르겠지만 반복되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재능도 상품이고, 상품은 그 가치에 따른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재능을 공짜로 쓸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은 그 직업 종사자 전체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재능기부는 ‘재능의 가치 있는 사용’입니다. 나의 시간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고, 사회 전체의 자산을 키울 수 있습니다. 스포츠에서 재능기부는 차세대 스타의 육성에 기여하고, 저변을 넓히는 효과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재능이 타인과 만나 새로운 가치로 전화(轉化)하는 유익한 활동입니다.

 

최근 활발하게 재능기부 활동을 하는 농구인이 있습니다. KBL 감독 데뷔 첫 해, 꼴찌 팀을 통합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그 해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20년 만에 한국 남자농구를 정상에 올리며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깔끔한 이미지와 매너로 ‘코트의 신사’라 불렸던 김진 전 감독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농구를 했습니다. 갖고 있는 능력에 비해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돌려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벚꽃처럼 화사한 봄날, 따뜻한 햇살과 함께 김진 감독을 만났습니다.

 

※ 본 인터뷰는 점프볼 5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 어린 친구들이 적극적이고 자신감도 넘쳐요

Q. 얼굴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요즘 바쁘게, 또 나름 좋은 시간들을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아마추어 팀들 지도도 하고, 지도자 양성 강좌나 중고연맹 지도자 강습회에 부탁을 받아서 다녀왔어요. 일본 민단 학교의 요청으로 농구 클리닉도 다녀왔네요. 인제에 발달 장애우 농구팀과도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웃음).

 

Q. 재능기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농구의 저변을 키울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했어요. 현장에 있을 때에도 시간이 있을 때 꾸준히 재능기부를 했습니다. 어린이나 청소년, 동호회는 한국농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뿌리입니다. 잘 관리를 하면 프로농구에도 건강하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20년 넘게 선수생활을 했고, 최근까지 선수들을 지도했습니다. 지금 어린 선수들을 보면 과거와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어린 친구들은 굉장히 적극적이고 자신감도 넘쳐요. 농구를 즐거워합니다. 우리도 그랬지만, 과거에는 주입식이 많았죠. 응용력을 발휘하려고 하면 감독들한테 혼이 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선수들의 창의력을 키우는데 저해가 되는 부분이고…. 요즘은 그런 점에서 많은 진전이 있습니다.

 

Q. 선수 시절 또 감독 시절 김현준, 김승현 등 많은 레전드 스타들과 함께 했습니다. 유망주들 중에 제2의 김현준, 제2의 김승현이 나올 수 있을까요?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루크 월튼 감독이 선수로 뛸 때 훈련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전술이해도가 높았지만 슈팅은 약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팀 훈련시간 1시간 전에 슈팅코치를 불러 따로 연습을 했습니다. 요즘 스킬 트레이닝이 활발하잖아요. 어릴 때 충분히 기본기를 익히고 엘리트로 진출하면 좋은 선수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기본기에 바탕을 둔 창의력이 나올 수 있어요. (※ 루크 월튼 : 전 LA 레이커스 감독으로 올 시즌 종료 후 새크라멘토 킹스와 감독 계약에 합의했다.)

 

Q. 스킬 트레이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스킬 트레이닝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존 다지라는 선수가 있었어요. 공을 다루는 능력은 탁월했죠. 그러나 그것만으로 좋은 선수가 되지는 않아요. 스킬 트레이닝은 개인능력을 키우는 역할입니다. 팀 전술, 부분 전술은 학교체육의 몫이에요. 스킬 트레이닝에만 의존하면 혼자 하는 농구가 될 수 있습니다. 스킬 트레이닝과 학교체육이 함께 가야 합니다. 기본적인 스탠스를 프로에서 잡아주는 것은 이미 늦어요. 어릴 때 잡아줘야 합니다.

 

 

■ 탄탄한 기본기와 반복 훈련

김진 감독은 춘천에서 태어나 원주에서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키가 커서 선생님의 권유를 받았고, 공을 갖고 노는 것이 재미있어서 농구를 계속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 경기를 보면서 붉은 유니폼을 입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목표를 달성했고, 그의 선수생활은 비교적 순탄했습니다.

 

Q. 농구와 인연이 적은 춘천 출신입니다. 어떻게 농구를 시작했나요?

아버님이 군인이셨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춘천인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원주로 전출을 가시면서 전학을 갔어요. 전학을 간 학교에서 키가 크고 재능이 있어 보이는 친구들을 테스트 했고, 농구를 하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공을 갖고 노는 것이 재미있어서 시작했어요.

 

Q. 중학교는 춘천,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습니다.

원주 진광중학교에 입학했는데, 농구팀이 동호회 수준이었습니다. 농구에 대한 갈증이 심해서 중학교를 자퇴한 후 춘천의 체육중학교에 다시 시험을 봤고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입학식 날 학교가 폐교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남학생은 전부 춘천중학교로 편입됐죠. 당시 춘천중학교는 농구를 잘 했습니다. 성적이 좋았고, 서울의 몇 군데 고등학교에서 진학 제의가 왔어요. 은사님도 농구를 할 거면 서울에 가서 하라고 말씀하셨고…. 3학년 2학기 때 신일중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Q. 저는 너무 어릴 때라 감독님의 고등학교 시절을 보지 못했고, 상당히 잘했다는 얘기만 주변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신일고등학교의 선수 구성이 좋았습니다. 대부분 지방에서 모인 선수들인데, 다 재능이 있는 선수들이었죠. 당시로는 엄청난 장신이었던 이용간(195cm) 선배가 있었고, 김남기(전 남자 국가대표팀 감독) 선배와 이성훈(전 KBL 사무총장) 선배 등 쟁쟁했습니다.

 

Q. 대학교 진학 과정에서 납치를 당했다고 들었습니다(웃음).

중학교 2학년 때 장충체육관에 정기전 경기를 보러 갔어요. 입장권이 없어서 화장실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는 어른들을 따라 들어갔죠(웃음). 경기를 보면서 빨간 유니폼에 반했어요. 저 학교를 가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2학년 말에 고대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와서 결정했고, 3학년 2학기부터 오전 수업 끝나면 오후에 고려대에 가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연세대 감독님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어요. 3학년에 동기가 7명인데, 2명은 대학 진학이 결정 안 된 상태였어요. 그 두 명을 받아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날로 감독님 집에 가서 3개월을 있었습니다. 원서 쓰는 날, 고등학교에 갔는데 체육선생님이 점심 먹고 원서를 쓰자고 하세요. 선생님과 함께 들어간 식당에서 고대 농구부가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리 약속이 된 거였죠. 졸업식장도 못가고 고대 연수원으로 들어갔어요. 그 때는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웃음).

 

Q. 우여곡절 끝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생활은 어땠어요?

1학년 때부터 경기는 조금씩 뛰었어요. 한 선배가 부상을 당하면서 출전시간이 많이 늘어났죠. 1학년 때 정기전에서 25분 정도를 뛰었습니다. 거의 정신이 나갔어요(웃음). 코트는 담배 연기로 뿌옇고, 물병과 음료수 병이 날아왔습니다. 벤치에 앉았을 때 저도 하나 맞았죠. 아픈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고량주 병이었어요(웃음).

 

Q. 선수 시절 이충희, 김현준, 최철권 등 좋은 슈터들과 함께 뛰었습니다. 각 선수마다 특징이 있었을 것 같아요.

좋은 슈터들은 많았죠. 그 중에서도 그 분들은 특별했어요. (이)충희 선배와 (김)현준 선배를 비교해 보면, 둘 다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경기를 뛰고 나면 분석을 많이 했어요. 0.02초, 0.03초의 움직임으로 수비를 따돌릴 수 있는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충희 선배는 운동능력이 출중했어요. 빠르게 달리다 멈춰서 던지는데 정확15600471261004도가 높아서 수비하기 어려웠고, (김)현준 선배는 농구선수로 뛰어난 운동능력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상대 수비의 타이밍을 뺏어서 던지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테크닉이 탁월했죠. 최철권은 득점력과 체력이 정말 대단했던 선수였습니다.

 

Q. 최근 한국 농구의 전문 슈터 부재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농구를 시작할 때 기본기부터 제대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탠스나 팔의 각도, 손목의 스냅, 손가락 동작 등을 정확하게 잡아줘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있어요. 성적 위주로 농구를 하면서 기본기가 취약해졌죠. 과거에는 기본기를 중요시하고 반복 훈련을 많이 시켰습니다. 그렇게 단계적으로 몸에 습관을 들여야 힘이 붙으면서 성장 속도가 빨라져요.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은 어렵습니다. 구력이 길수록 고치는 것도 힘들어요.

 

Q. 슈터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탄탄한 기본기와 반복 훈련인가요?

농구는 정교한 스포츠에요. 기본적인 것부터 몸에 익을 때까지 반복하는 연습은 필수입니다. 또 하나, 힘든 고난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자기와의 싸움이 중요합니다. 반복되는 훈련은 지루하잖아요. 그것을 이겨내야죠.

 

■ 기본기 위에 창의력

지금은 그리움으로 남은 전자슈터 김현준. 김진 감독은 김현준 선수의 체력이 대학교 저학년 때까지 약했다고 기억합니다. 대학교 3학년 때 힘이 붙으면서 진가가 나타났다고 하네요. 공을 림 안에 넣는 타고난 감각입니다. 그런데 감각은 그의 일부였습니다. 타고난 감각에 엄청난 노력을 더해서 당대의 슛쟁이가 되었습니다. 오른팔 감각이 나빠질까봐 아이를 안을 때도 왼손으로만 안았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김진 감독은 그 모습을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지켜봤습니다. 삼성전자에서만 12년을 함께 뛰었으니까요.

 

슈터와 인연이 깊었던 선수 김진이 지도자가 된 이후로는 재기발랄한 포인트가드와 많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드래프트로 김승현을 선발한 첫 해에 KBL 통합우승을 차지했고, 이후로도 김태술, 주희정, 김시래 등 당대의 톱 가드들과 함께 했습니다. 창원 LG의 첫 정규리그 우승은 김시래와 합작했죠.

Q. 감독 김진은 포인트가드 욕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가드 농구에 욕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높이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가드가 제 역할을 해야 빅맨과 슈터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드로부터 시작되는 트랜지션 게임을 특히 좋아합니다.

 

Q. 가드에게 권한을 많이 준다고 느꼈습니다.

창의력을 많이 키워주려고 했습니다. 가드가 경직되면 팀 전체가 굳어지기 때문에, 틀은 있지만 유연하게 플레이 할 수 있어야 해요. 공격 패턴을 하나 성공하면 수비도 그것에 대한 준비를 하잖아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응용력, 창의력입니다. 김승현이나 김시래 같은 친구들은 능력이 있어요. 조직력을 강조하면 이 친구들의 역할은 제한적이 될 수 있습니다.

 

Q. 많은 좋은 가드와 함께 했지만 감독님에게 가장 특별한 선수는 김승현일 것 같습니다. 드래프트에서 1순위가 나와도 뽑을 생각이었나요?

가드가 없어 고생했던 시기였어요. 그리고 시범경기에서 주전가드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가드 외에 다른 포지션은 괜찮았죠. 당시에는 김승현에 대한 평가가 높지 않았습니다. 재치는 있지만 신장이 작고, 자기 농구만 한다는 지적이 있었어요. 턴오버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는 김승현 선수는 번뜩이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외국선수들은 잘 받아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도 그해 드래프트 1순위는 송영진이었죠. 그래서 차라리 2순위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순위가 나왔고, 이제는 틀렸다는 생각했어요. 포기했는데 2순위에 전형수가 불리며 쾌재를 불렀습니다(웃음).

 

Q. 구체적으로 어떤 장점을 보셨나요?

공을 갖고 공격코트로 넘어가는 속도가 빨랐습니다. 공을 갖지 않은 선수들과 경쟁해도 빨랐어요. 여기에 하체 힘이 좋아 전력질주하다 원투 스텝으로 서면, 그 자리에 딱 서요. 수비들은 스텝이 밀리니까 자연스럽게 공간이 만들어졌죠. 상체도 좋고, 힘을 타고 났습니다. 또, 즐기는 스타일이에요. 스타성도 있고. 과감한 플레이를 쉽게 할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그런 점들이 외국선수들과 잘 맞았고, 외국선수들이 전적으로 신뢰했어요. 어떻게든 내 입맛에 맞는 패스를 주니까요. 사실 외국선수도 승현이와 맞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선수를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테크니션인 마르커스 힉스를 뽑았죠.

 

Q. 힉스 얘기가 나왔으니(웃음). 외국선수 선발에 실패가 별로 없었습니다. 외국선수 선발의 기준이 있을 것 같습니다.

NBA 출신도 많이 참가했는데…. 국내 선수들과의 호흡이 평가의 1순위였습니다. 힉스가 그랬고, LG에 있을 때 뽑은 크리스 메시도 (김)시래를 위한 선수였죠. 스크린 능력이 탁월하고 롤을 해서 들어가는 것이 빨랐어요. 단순하지만 팀에 도움이 되는 농구를 했습니다. 스크린을 활용한 시래의 창의적인 농구가 빛을 발할 수 있었죠.

Q. 포인트가드를 제외한 국내 선수들의 활용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외국선수 의존도가 너무 높지 않은가 하는 지적입니다.

김병철은 MVP를 받을 정도로 자기 역할을 해준 선수입니다. 전희철과 박재일도 그랬고, 조화가 잘 맞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모여서 팀이 되는 것이고, 물론 선수들이 희생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감독으로서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Q. 슈터와 마찬가지로 포인트가드도 더 이상 한국농구의 장점이 아니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역시 기본기의 문제일까요?

그렇죠. 창의력은 기본기를 전제로 합니다. 기본기 위에 창의력이 생겨요. 여기에 본인의 노력이 더해져야 합니다. 가드는 타고 나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볼 핸들링과 패스도 중요하지만 코트비전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본인 외에 코트 위 9명의 선수를 모두 시야에 넣을 수 있어야 합니다.

 

■ 농구는 제 인생입니다

기본기는 단단한 반석입니다. 좋은 재료는 농구하기 좋은 환경과 지도자입니다. 여기에 개인의 노력이 더해져야 비로소 좋은 선수가 나온다는 것이 김진 감독의 시각입니다. 지극히 보편타당합니다. 그 보편타당한 논리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 어쩌면 한국 농구의 과제는 아닐까요? 김진 감독의 재능기부는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시도로 보였습니다.

 

Q. 중고등학교의 엘리트 농구팀이 많이 줄었습니다. 농구의 저변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고요.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요?

3대3 농구를 하려는 선수가 있고, 그것을 유치하고 싶은 지자체도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어디까지 저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팀과 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줄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저변이 부족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유소년 클럽이라든지 방과 후 스포츠를 통해 농구를 많이 하는 것 같고요. 생활체육을 엘리트의 하부리그처럼 운영하는 시스템도 검토가 필요합니다.

 

Q. 작년에 야구처럼 ‘독립구단’을 생각해봤다는 인터뷰를 봤습니다. 같은 맥락일까요?

같은 맥락이죠. 중도에 농구를 그만 뒀지만 계속 하고 싶은 선수들에게 다시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그 선수들이 유소년이나 장애인 교육 프로그램에 강사 역할을 하며 저변을 넓힐 수 있고, 엘리트 대상 스킬트레이닝이나 지도자 대상 교육, 심판 클리닝 같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어요. 시설 사용 문제로 합의가 안됐지만 관심 있는 단체장들이 많습니다.

 

Q. 10년, 20년 후에 감독님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농구 발전에 작은 부분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죠.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평생 농구를 하고 있고, 제가 갖고 있는 능력에 비해 많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돌려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독립구단의 꿈도 아직 꾸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3대3으로 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서 어느 쪽으로 갈지는 고민 중입니다.

 

Q. 제가 하는 인터뷰에 항상 나오는 질문입니다. 김진 감독에게 농구란?

제 인생이었던 것 같아요. 보편적인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이 들기 전부터 농구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까 제 인생의 전부죠. 가족들과 보낸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생의 전부였고, 아직도 그 과정에 있습니다.

 

# 사진_ 홍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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